국화꽃 옆에서 - 서정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며 머언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내 꽃잎을 피우려고 간밤엔 무서리..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꽃 - 김춘수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별 헤는밤 - 윤동주 별 헤는 밤 -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절정 - 이육사 절정(絶頂) - 이육사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가 보다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광야 - 이육사 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梅花香氣) 홀로..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자화상 - 윤동주 자화상(自畵像)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또 다른 고향 - 윤동주 고향에 돌아 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밤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세워 어둠을 짖는다..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우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4.11
달을쏘다 - 윤동주 달을 쏘다 번거롭던 사위(四圍)가 잠잠해지고 시계 소리가 또렷나나 보니 밤은 저윽이 깊을 대로 깊은 모양이다. 보던 책자를 책상머리에 밀어놓고 잠자리를 수습한 다음 잠옷을 걸치는 것이다. 『딱』스위치 소리와 함께 전등을 끄고 창녘의 침대에 드러 누우니 이때까지 밖은 휘양찬 달밤이었던 것.. 이야기 셋/詩이야기 2007.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