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둘/이것저것들~*

2008.10 싱글즈 기사 - 류수영 !!

선이래요 2009. 1. 20. 15:43
 
 
류수영의 배우로서의 성장기는 모범적이다. 그러나 인간 류수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류수영보다 실제 류수영은 훨씬 멋진 남자이다. 솔직담백한 인터뷰가 그 증거다.
 
 
관객들이 소비하는 것은 배우의 이미지이다. 드라마 혹은 영화 캐릭터와 한 몸처럼 합체된 그들을 보며 사람들은 혼자 꿈을 키워간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이미지와 배우를 동일시하다 보면 어느새 그 배우의 존재감은 실체와 상관없이 이만큼 몸집이 커져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톱스타들은 저마다 지어놓은 성에 들어가 공주처럼, 왕자처럼 산다. 한 번 거대한 성 안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 높고 장대한 성곽은 좀처럼 허물어지지 않는다. 성 안의 방에서 그들은 잠자고 먹고, 거울을 보고, 책도 읽고, 싸이월드도 한다. 가끔 우린 몰래 카메라(그러나 알고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로 그들을 훔쳐본다. 그는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는다. 하지만 카메라가 사라지면 그는 곧 잡지 <맥심>을 꺼내 읽는다. 말 못하는 어떤 배우는 강사에게 레슨을 받는다. ‘인터뷰 잘하는 법’ 에 관해서. ‘이런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돼요. 좀 걸린다 싶으면 바로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하세요. 그리고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그냥 한 번 씨익 웃어주세요.’

우리가 아는 스타의 모습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10년 전의 스타는 지금도 여전히 스타다. 세상에 그토록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이름값만으로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스타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몇 년째 그 리스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영화가 개봉할 때 즈음이면 으레 홍보 차원에서 잡지 몇 개를 골라서 인터뷰를 한다. 영화 얘기가 물론 절반 이상이다. 요즈음 스타들은 말도 어찌나 잘하는지. 역시 나이는 저절로 먹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반복되는 인터뷰가 슬슬 지겹다. 식상하다.

그렇다면 누가 궁금한데?

<대한민국 변호사>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의뢰인과 변호사, 네 명의 남녀가 펼치는 돈과 사랑의 맞대결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이혼 전문 변호사와 돈밖에 모르는 자산가, 우아한 여배우가 얽히고설킨 드라마. 시놉시스만 보면 굉장히 통속적으로 흘러갈 것 같은데. 은근히 재미있다. 시청률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까다로우신 비평가들에게 웰 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유쾌했다. 돈밖에 모르는 자산가 한민국(이성재)은 은근히 귀엽고, 그의 변호를 맡은 푼수데기 변호사 우이경(이수경)은 볼수록 사랑스럽다. 한민국에게 1000억원의 재산 분할 청구 소송을 한 이애리(한은정)는 여우 같은 줄만 알았는데, 나름 연민을 자아낸다. 우이경의 동거인이자, 이애리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변혁(류수영)은 못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제일 착한 바보다. 이 드라마의 특징은 갈등 구도 속에서도 악역이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 자체로만 본다면 무게중심은 이성재와 이수경에게 쏠려 있다. 당장 가려운 데를 긁어주거나, 이 드라마를 즐겁게 봤던 시청자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선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그들의 성에 몰래 카메라를 들고 가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싱글즈>는 류수영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젊고 잘생겼으니까? 싱글이니까? 맞다. 하지만 10년째 꾸준한 보폭으로 걸어오면서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확장해온 이 배우에 대해서 우린 과연 무엇을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드라마에 조연에서 주조연, 주연급으로 성장하면서 영역을 넓혀온 그는 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안정적인 존재감으로 자리매김을 해왔다. <썸머 타임>이란 화끈한 영화로 주목을 받았고, <명랑소녀 성공기>, <정>, <서울 1945>, <넥스트- 환생>, <불량 커플>등의 드라마에서 색깔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서울 1945>와 <넥스트- 환생>은 류수영의 양각과 음각을 모두 보여준 드라마다. 특히 1940년대 격동의 시대의 역사와 로맨스를 제대로 구현했다고 호평 받았던 <서울 1945>에서 맡았던 고뇌하는 공산군 장교 최운혁은 모든 여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위험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남자였다. 군복도 최운혁도 류수영에게 딱 맞았다. 의사, 교수, 변호사, 사업가 등 전문직 전문 배우처럼 엘리트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던 현대극에서 그의 이미지는 두 가지다. 젠틀하고 다정다감하거나, 아니면 비열하고 야비하거나.

착하거나 혹은 나쁘거나. 배우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요소이지만, 유심히 그의 얼굴을 살펴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드라마틱하다. 음영이 뚜렷한 눈과 우뚝 솟은 잘생긴 코와 상대적으로 섬세한 입술, 남성적인 이목구비에서는 드라마틱한 서사가 느껴진다. 그래서 <싱글즈>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던 그의 성에서 역할극을 요구했다. 천사와 악마를 연기해보라고. 환하게 웃으면 천상 착한 남자이지만, 날카로우면서도 비애에 찬 눈빛은 <다크 나이트>의 히스레저의 눈빛처럼 서늘하고 강렬했다. 카메라 앞에서 천사와 악마의 연기를 마친 그는 메이크업도 지우지 못한 채 인터뷰를 시작했다.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며, ‘릴랙스, 릴랙스’. 악마의 분장은 무서웠지만, 나긋나긋한 그의 목소리에선 신뢰감이 느껴졌다.


 
 
데뷔한 지 꽤 오래돼서 30대 초반은 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서른 살이다. 20대 초중반에도 꽤 성숙한 분위기였다.
스무 살 때부터 서른 살 역할을 많이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20대 초반인데도 으레 서른한두 살로 본 사람들도 많았다. 늦은 감은 있지만, 요즘에는 제 나이를 찾아 먹으니까 기쁘다.

젊을 때부터 실제 나이보다 많은 역할을 하면 어떤가. 실제 그 나이가 되어서 하는 것과는 다를 텐데.
다르다. 처음 연기 시작할 때는 지금 같은 저음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가늘었다. 20대 초반부터 회사 중역, 건축 디자이너, 의사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연습하다 보니 또 되더라. 어릴 때부터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어색하진 않았다. 고등학교 때도 술집에 가면 잡는 경우가 없었다. 그래서 스무 살 때부터 서른 살의 연기를 쉽게 했던 것 같다. 실제 그 나이가 되니까, 많이 편하다. 크게 다른 점은 없다.

<대한민국 변호사>. 웰 메이드 드라마라고 호평을 많이 받았는데 시청률이 잘 안 나와서 섭섭했겠다. 연기할 때 시청률에 영향을 많이 받나.
영향을 안 받는다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시청률이 낮다고 드라마 보는 시청자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우리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9%대라고 해도 영화로 치면 몇 백만 명의 관객이 보는 것과 같기 때문에 큰 영향은 안 받는다. TV라는 게 재방송도 있고, 다시보기 다운로드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체감 시청률은 사실 더 높다.

<대한민국 변호사>에서 이애리랑 변혁의 애정 구도가 펼쳐지는 듯하다가 흐지부지됐다.
시놉시스의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서로 기대고 싶고, 둘이 불장난을 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드라마 수위가 처음엔 좀 강했다. 변혁이 이경에게 따귀를 맞고도, 바로 같이 잔다. 처음엔 강했는데 점차 소프트해졌다.

주변의 반응이 안 좋았나?
강하고 자극적인 게 관심을 모을 수는 있지만, 한국 드라마에는 왠지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사람들은 남자든 여자든 다들 자기보다 순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선 그보다 더한 상황도 흔한데 TV에서 그러면 리얼하다고 하면서도 ’쟤는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그러냐. 줏대 없이’ 이러면서 욕한다. 그래서 약간 유하게 표현된 면도 없지 않다. 변혁이 이혼한 지 얼마 안된, 동거녀의 친구와 엮어진다면 시청자들의 반발이 셀 거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엔 애리와도 친구로 남았고, 우이경과도 다시 합치지 못했다.

한마디로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여자들이 모두 한민국만 좋아하고.
그래서 조금 속상했다. 변혁 캐릭터가 있고, 한민국이란 캐릭터가 있는데, 어느 순간 다 한민국 쪽으로 가버린 거다. 그리고 16부작 드라마에서 네 명의 캐릭터가 다 돋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것도 깨달았다. 캐릭터 드라마가 아닌, 로맨틱 코미디였으니까, 어쩔 수 없다. 아쉬운 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 끝났기 때문에 만족한다.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류수영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사람들에게 물으니, ‘몸이 좋다’는 반응이 의외로 많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몸매에 자신 있나.
몸 별로 안 좋은데 아마도 <썸머 타임>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때밖에 몸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아직까지 케이블 TV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재방송을 한다. 불후의 명작이야(웃음).

그렇게 자주 방송하면 스트레스 받지 않나.
잘 봤다고 인사하면 좀 속상하다. 굉장히 마니아 팬이 많다. 40대 남성들은 다섯 번은 그 영화를 봤다고 한다.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수위 높은 영화를 할 생각을 했나.
처음엔 안 하려고 했는데, 감독님이 계속 나랑 하고 싶다고 그러셔서 생각을 해봤다. 한 달 반 있다 결정을 했다. 다시 한 번 감독님을 만났는데, 감독님이 <내일로 흐르는 강>이라고 한국에서 최초의 동성애자가 나왔던 영화로 상도 받으신 분이다. “나는 야하기만 한 영화를 찍을 생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 처음에는 베드신만 보였는데 다른 내용이 보이더라. 결과적으로 20분이 잘렸는데 베드신은 한 개도 안 잘리고 다른 부분이 많이 잘렸다. 그래서 좀 영화가 많이 퉁퉁 튄다. 찍을 때 나름 진지하게 찍었다. 나의 필모그래피 상으로는 손해를 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용기도 생겼고, 젊은 배우들은 노출을 두려워하는데 연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범주가 훨씬 더 늘어났다고 할까.

소지섭이 한 인터뷰에서 ‘베드신 찍어볼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자신 없다고 했다. 몸에 자신이 없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라 그걸 다시 볼 용기가 없다고 답했는데, 당신도 그랬는가.
나도 딱 한 번밖에 못 봤다. 사실, 케이블 TV에 나올 때, 벗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되게 힘들다.

자신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나.
섹시한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은데 가끔씩 느낄 때가 있다. 양복에 셔츠 입고 있을 때. 그리고 섹시하려면 훨씬 시니컬해야 될 것 같다. 냉소적이어야 하고.

가장 섹시한 남자배우 하면 누가 떠오르나.
조지 클루니. 막 흐트러지게 웃어도 안 흐트러지는 무언가가 있다.

브래드 피트는?
그는 섹시함 그 자체인데, 좀 과하다. 감춰지는 맛이 덜하다. 조지 클루니는 같이 얘기만 해도 섹시하다고 느낄 것 같은데, 브래트 피트는 여자가 뽀뽀라도 해야 섹시하다고 느낄 것 같은, 더 진도를 나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존재감만으로도 흥분되고 설레는 사람이 섹시하다.

몸 관리는 어떻게 하나.
운동을 좋아하는데 살이 너무 잘 찌는 편이라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금방 찐다. 다행히 빼는 것도 금방 뺀다. 이번 드라마 찍기 전에도 12kg을 뺐다.

어떻게 뺐나.
웨이트트레이닝하고, 밥 적게 먹고. 늘 얘기하는게 형편없는 식사와 과도한 운동. 그러면 금방 빠진다.

당신의 목소리가 좋다. 배우로서 아주 유리할 것 같은 목소리다.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팬들도 내 목소리를 좋아한다.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란 얘길 들었다.

얼굴은 좀 세게 생겼는데 목소리가 좋아서, 인상까지 부드러워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좋아진 게 성격은 아닌 것 같고, 목소린 것 같다. (웃음)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센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진 않을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해바라기>를 보고 김래원 씨가 참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목소리가 참 좋다고 생각해서 강한 캐릭터가 어울릴까 했는데, 영화 속에서 착해 보이지는 않았다. 상황이나 이야기가 주는 캐릭터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변호사>에서도 그랬지만 여자들은 착하지 않은 남자를 좋아한다. 특히 연애 경험이 없는 여자들의 대표적인 이상형이 착하지 않은 남자다. 작가 선생님이 한민국 캐릭터를 처음에 되게 나쁘게 잡았다. ‘착하다, 착하지 않다’가 ‘못된 놈이다, 좋은 놈이다’ 가 아니라, ‘친절한 사람이냐, 불친절한 사람’이냐 그 차이다. 착하지 않은 남자는 불친절한 건데 그게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한민국도 그렇다. 그는 못된 놈이 아니라, 불친절한 놈일 뿐이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불친절하다가도 갑자기 친절하면 되게 감동한다.
착한 사람은 잘하다가 한 번 못하면 욕을 엄청 먹는다. 그런데 못된 사람은 어느 정도 해도 ‘그래 너니까 참는다’ 하다가 한 번 잘하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변혁도 처음에 보면 나쁜 남자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되게 착한 남자더라. 알고 보니 착한 놈.
작가 선생님도 “어떻게 하다 보니 변혁이 제일 착해. 제일 나쁜 놈일 줄 알았는데 쓰다 보니 변혁이 제일 착해졌어”라고 하시더라.


 
 
류수영은 착한 사람인가.
못된 사람에겐 못된 것 같다. 누구나 그렇지 않나. 두 가지 면이 존재한다. 좋은 면도 있고, 이기적인 면도 있다. 요즘 하는 생각이 서른 살도 됐고, 남자가 제일 좋아야 할 시기가 왔으니까 여유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다. 자기 생각은 있되, 쉽게 분노하거나 예민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쉽진 않지만.

히스 레저가 자살한 게 <다크 나이트> 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역할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배우들이 많다. 수영 씨는 어떤가.
배우 각자의 캐릭터도 있지만 작품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몰입을 해야만 하는 작품이 있고, 몰입을 하면 안 되는 작품이 있기도 하다.

완전히 자신을 지독하게 몰아쳤던 작품이 있나.
아직까지 그렇게 지독한 작품을 만나보진 못했다.

드라마에서 일상적인 악역 캐릭터 말고 영화 같은 데서 강렬한 악역을 해보고 싶진 않나.
한번 해보고 싶다. 요즘 드라마는 악역이 없어지는 추세이다.

영화에서 만약 악역을 한다면?
일단은 직업은 없어야 한다. 어쩌다 보니, 드라마에서 전문직 역할만 했다. <불량커플> 에서도 교수였고, <서울 1945>에서도 엘리트 공산당원이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전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사실 양복 입고 연기하는 거 불편하다. 실제 마음으로도 양복 입고 연기하는 것 같아서. 날 풀어놨을 때 얼마나 자유스러울지 모르겠지만, 우선 건들건들 편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

신인 시절에도 별로 신인 같다는 느낌이 안 들긴 했지만 어쨌거나 가랑비에 옷이 젖듯 비중을 넓혀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
그러면 내공이 세야 되는데 별로 그렇지도 못한 것 같다. 사실 내 나이에는 스타로 뜨고, 이후에 배우가 되는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난 지금이 좋다. 버스도 지하철도 탈 수 있고.

버스 못 탈 것 같은데?
퇴근 시간에만 안 타면 된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내가 이걸 왜 해’ 이런 생각은 안 한다. 내가 어떤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폭넓은 연기를 하고 싶다.

배우로서 참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 라는 말을 신인 때부터 들어왔다. 중요한 때라는 건 시기가 아니라, 시점을 말하는 것 같다. 나도 항상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라고 생각하는데 지나고 나면 또 똑같다. 사람들은 내가 잘하면 알아봐주고, 못하면 또 까먹는다. 꾸준히 내가 열심히 잘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번 역할은 본의 아니게 비중이 좀 작아졌지만 꾸준히 자신을 잘 보여주는 연기자가 되는 게 나의 숙제다.

연기를 하면서 슬럼프에 빠지거나,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
나는 항상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학교 잘 다니고 있을 때 요리 프로 나왔다가 눈에 띄어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게 되었고, 어떻게 하다가 지금까지 왔다. 나는 특별한 꿈이 없었다. 지향점이 있는 삶이 왠지 시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에 불을 켜고 난 뭐가 될 거야’ 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뭐야, 시시해, 그게 다야?’ 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싶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려고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래서 처음엔 ‘3년만 해보자’ 고 결심하고 시작했다. 처음에도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잘 떨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무대에서 노래 부를 때는 떨린다. 지난 주에 팬들과 함께 MT를 갔다. 노래를 불러야 하는데 너무 떨렸다. 그리고 시상식에 갔을 때, 심지어 상을 주러 갈 때도 떨린다. 연극무대에서 연기할 때도 안 떨렸는데 신기하다.

멍석 깔아주면 떨어서 아무것도 못 하는 타입?
카메라 앞에서는 안 떨리는데 쇼 같은 데서는 떤다.

그래서 오락 프로를 안 하나.
옛날에는 했었다. <야! 한밤에> MC도 잠깐 했었고, 드림팀도 잠깐 나갔었고. 근데 역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우성인자가 뭔가.
붙임성. 화를 오래 안 가지고 있다. 스스로 풀거나, 잊는다.

엉뚱한 면도 있을 것 같은데.
학교 다닐 때는 그런 소릴 들었다. 치기 어릴 때, 낙엽 떨어지는 게 좋아서 가로수를 발로 차고 다닌 적이 있다. 뭔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좋다. 눈이 오면 무척 좋아한다.

당신이 꿈꾸는 일탈은?
혼자 불쑥 여행을 가거나 오토바이 타고 빨리 달린다. 시속 170km로 달리면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달리게 된다. 헬멧을 벗으면 턱이 아플 정도다. 금지된 것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진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비행기를 꼭 한번 운전해보고 싶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개인용 로켓을 사서 타보고 싶다. 날아가는 꿈을 많이 꾼다.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붕 떠오르면 기분이 좋다.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매의 눈 옆에 카메라를 달아서 하늘을 나는 매의 시야를 보여줬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입체 영화를 보듯이 하늘을 날았다. 다시 태어나면 새로 태어나고 싶다.

어릴 땐 어떤 아이였나.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건 못 참고 물어보는 아이였다. 하도 질문이 많아서 유치원 선생님이 “남선이 (그의 본명은 어남선이다)는 유치원비 두 배 내야돼” 이러셨다. 밝은 아이였고,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커서 늘 대장을 했다.

여자애들에게도 인기 많았겠다.
인생 최고의 시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 이후로 별 연애 스캔들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소개팅도 못 해봤다. 여자 손을 처음 잡아본 것도, 첫 키스도 대학교 들어와서 했다. 여자애들을 만나면 부끄러워했다. 어쩌면 내가 여자란 존재를 너무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어떤 책을 보니까 일찍 이성을 알고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은 이성 앞에서 부끄러움을 많이 느낀다고 하더라.

여자 친구에게 잘해줄 것 같다.
사람에게 잘해준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닌 것 같다.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 이벤트를 해주는 것? 그런 것이 잘해주는 건 아닐 텐데. 애정 표현은 잘한다. 아버지 영향이 크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셔서.

연애 고수들은 좋아한다고 해서 그 마음을 다 표현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것에 동의하나.
잘해주더라도 어느 정도 내가 문고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려면 이벤트나 고백이 아니라, 가끔은 차갑지만 섹시한 모습도 보여주고, 상대방에게 여전히 흥미로운 사람이 되어주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몫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류수영은 어떤 사람인 거 같나.
한 마디로 표현하진 못하겠다. 옛날엔 피터팬 신드롬이 강했던 사람이었고 지금은 그랬던 나를 탐탁지 않아 하고, 나이 잘 먹고 싶은 서른 살 남자?



 

 

싱글즈 기사입니다 ^^*